93년 초까지 음악방송, 예능을 넘나들며 2집 후속곡 활동을 이어가게 되는데 이때 다들 잘 아는 출입국 사무소에서의 비자 연장 거부 사건이 일어나면서 한국을 떠나게 됨 이후에도 음악활동을 아예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음. 미국에서 미국인들로 구성된 팀 활동을 기획하기도 했지만 잘 풀리지 않았고 이후 비자 문제가 해결되고 2001년 V2 라는 이름으로 다시
됐다. ‘슈가맨3’ 이후에는 귀국 일정과 팬미팅 등이 갑자기 결정되고 진행되는 바람에 경황이 없어 저희 프로그램 출연에 대한 이야기가 금방 진전되진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출연이 결정돼 개인적으로는 기쁘다.” 지난 달 31일 서울 세종대에서 열린 양준일 팬미팅에 등장한 MBC ‘쇼! 음악중심’ 제작진의 화환. 사진 양준일 팬
연 가수 양준일이 지상파 음악프로그램에 첫 출연한다. MBC 음악 프로그램 ‘쇼! 음악중심’ 측은 2일 오후 홈페이지를 통해 오는 4일 오후 3시30분 생방송에 양준일이 출연한다고 공지했다. 양준일은 지난달 JTBC ‘투유 프로젝트-슈가맨3(이하 슈가맨3)’를 비롯해 ‘뉴스룸’ 등 버라이어티나 뉴스 프로그램에는 출연했지만 음악전문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MBC ‘쇼! 음악중심’ 팀은 지난해 양준일이 유튜브를 기반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할 당시부터 그의 행적을 수소문하는 등 오랜기간 동안 양준일의 섭외에 공을 들여온 것으로
인트로 영상을 사전녹화 방식으로 촬영했는데 촬영 당시에는 600여 명이 팬이 공개홀을 메웠고, 이후 생방송 입장관객은 1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생방송을 앞둔 오후부터는 양준일의 플래카드를 든 팬들의 모습을 자주 확인할 수 있었다. 양준일은 ‘2020년 기대가 모이는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쇼! 음악중심’의 특집에 출연해 25~30살 어린 아이돌 가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예정이다. 지난달 31일 서울 세종대에서 데뷔 첫 팬미팅을 연 양준일은 생애 첫 광고출연을 비롯해 복귀
때부터 개인적으로 팬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방 촬영이나 행사 무대를 가면 다각적으로 양준일씨의 행적을 수소문하곤 했다. 팬카페 등에도 글을 남겼는데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었다. 그러던 와중 JTBC ‘슈가맨3’에 출연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접촉이 됐다. ‘슈가맨3’ 이후에는 귀국 일정과 팬미팅 등이 갑자기 결정되고 진행되는 바람에 경황이 없어 저희 프로그램 출연에 대한 이야기가 금방 진전되진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출연이 결정돼 개인적으로는 기쁘다.” 지난 달 31일 서울 세종대에서 열린 양준일 팬미팅에 등장한 MBC ‘쇼! 음악중심’ 제작진의 화환. 사진 양준일 팬 커뮤니티 -
당시 기준 다소 튀었던 외모와 패션, 여기에 한국어를 잘 못한다는 것 때문에 대중의 반응이 비호에 가까웠음 지금 보면 괜찮아 보이는 문제없는 모습이지만 당시 대중들이 보기에 양준일은 다소 중성적인, 튀는 이미지였다고 함. 이때문에 '호모같은 놈', '나대는 놈' 등의 혐오표현을 들어야 했음 그렇게 양준일은 몇개월간의 한국 활동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게 됨 * 양준일의 새로운 음악, 뉴잭스윙 양준일의 음악을 논하자면 2집
커뮤니티 - 양준일의 데뷔무대가 MBC였다고 하던데? “그렇다. 1991년 MBC에서 방송된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이하 토토즐)’을 통해 데뷔했다. 당시 이덕화, 김희애씨가 진행을 했는데 당시 영상이 유튜브에 남아있기도 하다. 저희 입장에서는 데뷔한 방송사에서 복귀 무대를 하는 것이 뜻깊다고 생각해 섭외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 지난달 31일 데뷔 첫 팬미팅에서도 ‘쇼! 음악중심’ 제작진이 보낸 화환이 화제가 됐는데. “공연장을 찾은 많은 팬분들께서 알려주신 걸로 알고 있다. 당시 출연은 거의 확정을 하셨었고, 세부사항을 준비 중이었는데 저희를 택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저희는 여전히 그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라는 마음을 담아 전해드리고 싶었을 뿐이다.(웃음)” - 양준일의 30년 만의 방송사 음악프로그램 출연이 성사됐는데, 연출자로서의 각오는? “어렸을 당시 ‘토토즐’ 출연 영상을 보면서 동경하던 분이었는데 모시게 돼 감회가 새롭다. 그리고 MBC와 가지고 있는 인연도 다시 이어지게 돼 기쁘게
* 92년 말~ 93년 까지 양준일은 한글 가사로 된 '가나다라마바사'로 활동을 이어감. 가나다라마바사는 양준일의 다른 노래들에 비해 차트 순위가 높은 편이었고 양준일 역시 소수의 마니아 층이긴 하지만 팬이 생겨 콘서트를 하기도 하는 등 양준일의 2집 활동은 1집에 비해 다소 성과를 거두게 됨 이어서 양준일은 2집 타이틀곡의 여러가지 버전을 수록한 Remix 앨범을 발표하고
'오직 하나뿐인 그대'로 큰 인기를 끌었고 (강수지와 공개열애 후 헤어진짤로 유명하신 그분 맞음) 1990년 11월 데뷔한 신승훈이 1991년 초까지 '미소 속에 비친 그대'로 1위를 석권하는 등 남성 솔로 가수계는 나름 치열했음 * 1991년 양준일의 데뷔 양준일은 같은 미국 교포 출신인 이현우와 1991년 데뷔 동기였음 두 사람은 같은 교포였지만 이현우는 한국어를 잘했고 단정한 외모에 대중의 취향에 맞았던 발라드로 정상을 찍은 반면, 양준일은